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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책을 읽다가

고슴도치의 우아함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1. 13.
고슴도치의 우아함... 뭐랄까. 제목이 한껏 강렬하다. 세상을 향한 가시로 자신을 지키며 살아가는 한 존재가 내면에 지닌 우아함...을 구현하는데 이 제목 이상의 적확함이 있을까?

하지만 많은 분들이 포기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일단 어렵기 때문으로, 자주 등장하는 철학적인 용어들도 그렇지만 기본적으로는 프랑스인의 정서가 우리에겐 상당히 낯설고 즐기기엔 '너무나 멀리' 있어서 이다. 우리가 미국적인 것에 이미 길들여져 미국 드라마나 헐리우드 영화를 보는데 아주 사소한 어려움만을 느끼는데 반해 프랑스적인 것은 '일종의 이교도적'인 셈이라고 할까? 빠져들기에 일단 생경하다.

등장인물을 보자. 르네 미셸이라는 54세의 수위 아주머니와 팔로마 조스라는 12살 소녀가 주인공이다. 프랑스에서도 손꼽히는 지도층이 사는 지역 고급 아파트(100 평이 넘는...)에서 남편을 잃고 계속 수위로 일하는 르네는 초등학교 이래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지만 방대한 독서를 통해 독학으로 어마어마한 교양을 쌓았다. 하지만 자신의 교양을 철저히 숨기면서 평범하고 무식한 수위 연기를 하며 살아간다.

너무 똑똑해서 같은 또래 애들은 물론 최고 학부를 다니는 언니나 어른들의 천박함과 위선을 마음 속으로 조롱하며 살아가는 팔로마는 자신의 천재성을 감추면서 견디기 힘든 현실의 타개책으로 방화와 자살을 꿈꾼다. 너무나 다른 조건, 즉 연령, 신분 등이 천양지차인 이들 두 사람은 하지만 공통점이 많다. 한마디로 둘다 고슴도치이다.

이 소설은 처음이 어렵다. 적응하기 다소 어렵지만, 일단 분위기를 파악하면 한껏 유쾌함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유머있게 표현했지만 이들 두 주인공이 '스테레오'로 들려주는 한마디 한마디의 내공이 놀랍다. 특히 '노블레스'들의 속물근성과 그 위선에 대한 신랄한 비판은 통쾌할 정도이다.

행할 줄 아는 자들은 행하고
행할 줄 모르는 자들은 가르치고
가르칠 줄 모르는 자들은 가르치는 자들을 가르치고
가르칠 줄 모르는 자들을 가르칠 줄 모르는 자들은 정치를 한다.

- 행위가 아닌 말이 힘을 갖는 세상. 최고의 능력은 바로 능변인 세상에 살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뮈리엘 바르베리, 한국방문 중

그러면서도 그 대안이 멋지다. 가식적이지 않고 참다운 삶, 형식적이지 않고 의미있는 배움, 진실되고 그야말로 우아한 인간존중, 서로에 대한 배려... 그리고 삶의 무게를 있는 그대로, 그리고 약간은 감상적으로 느껴보고 젖어보게 하는 보너스까지.

기대 이상의 멋진 시간이었다. 뮈리엘 바르베리... 그야말로 한껀 했다. 마케팅 없이 거둔 이 소설의 눈부신 성공으로 그녀는 세계 문학계의 신데렐라가 되었으며 교사직도 그만두고 다음 소설을 위해 일본에 체류한다는 멋진 꿈을 실현시켰다.

작년 한국을 찾은 그녀가 자신의 소설 의도를 한 문장에 담았다. 인용한다.

“여전히 문화적 엘리트주의를 추종하면서도 말로는 늘 ‘문화는 모든 계층이 향유해야 한다’고 하는 프랑스 지식인 사회의 이중성을 꼬집고 싶었어요. ‘라벨’을 중요하게 여기고 그 라벨에 대한 이미지가 고착화해, 수위는 전혀 지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지 보여주고 싶었죠.”

이것은 동기일 뿐, 그녀가 담아낸 것은 그 이상이 분명하다.

바로가기>> 뮈리엘의 근황과 최근 찍은 사진들을 볼 수 있는 블로그(불어)

고슴도치의 우아함(양장본) 상세보기
뮈리엘 바르베리 지음 | 아르테 펴냄
쉰네 살 수위 아줌마와 열두 살 천재소녀의 감동 어린 만남이 시작된다! 콧대 높고 못생긴 수위 아줌마 르네와 자살을 결심한 열두 살 천재소녀 팔로마의 기상천외한 발상을 그린 장편소설. 파리의 중심 지역이자 부자 구(區)의 하나인 6구와 7구는 예로부터 귀족들의 저택(hotel)과 살롱이 모여 있던 상류층 지역인 쌩 제르멩 데 프레가 있는 곳으로 현대와 고전이 공존하는 부자 동네이자 멋진 동네이다. 그곳을 관통하는 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