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군대에 간 수강생 제자가 보라며 건네준 DVD였다. 취향에 맞을까 모르겠다며 건넨 그 DVD. 꼭 보겠다며 받아든지 몇 달이 지난 이제야 보게 된 것이다. 오랫만에야 가능하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다. IPTV에 밀려 창고로 갔던 DVD플레이어가 거실로 돌아온 것이 바로 그것이다.
영화 추천이라면 신뢰할 만한 친구였기에 나름 기대를 갖고 영화를 틀었는데, 이건 한마디로 대박이었다. 정말 좋은 다큐영화이며, 소재도 좋았지만 소재를 다루는 기획과 편집이 좋았다. 몇 장면만 뽑아본다.
1. 유럽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자부심과 열정을 얻어 돌아온 할아버지와 할머니들. 이들은 미국 메사추세츠 주의 노스햄튼이라는 지역에 사는 노인들이다. 로큰롤을 부르는 노인들로서 유명해진 이들을 이끄는 사람이 있었는데 나이는 50대로 아주 젊은(?) 밥 실먼이 그다. 그는 공연을 비롯한 모든 활동을 기획하고 곡을 선정하며 단원들을 가르치고 대소사를 모두 챙긴다. 영화는 2006년 이들의 일상을 담는다. 이들은 새로운 공연 Alive and Well 을 준비한다. 무대에 서기까지 많은 에피소드와 우여곡절을 생생하게 기록한다.
밥 실먼은 성실하며 능력있는 단장이다. 자상한 그이지만 연습에서는 호랑이다. 진척이 없거나 준비가 부족할 때에는 매몰차게 몰아붙인다. 연습하던 곡을 버릴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몇몇 단원들은 심하게 마음이 상하기도 한다. 그런 면이 밴드의 실력을 유지하는 바탕이 된다. 그런가 하면 그는 단원들의 컨디션을 일일이 챙기는 사람이다. 나이가 많다보니 갑자기 위독해지고 입원을 하는 단원들이 속출했다. 아픈 단원들 안부를 일일이 챙기고 격려해주는 것이 그의 주요 일과다.
2. 나오는 노래들이 새로운 스타일로 재해석되어 듣는 재미가 있다. 클래쉬의 ‘Should I stay or Should I go’와 라몬즈의 ‘I wanna Be Sedated’는 독특하고 개성이 넘치며, 먼저 떠나간 동료를 추억하는 장면에서 흐르는 'Nothing Compares to You'와 'Forever Young'은 잔잔하며 진한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괴성과 함께 시작되는 'I feel good'과 can이 무려 71회나 나오는 'Yes, We Can Can'에서는 웃음을 참기 힘들다. 실제 공연의 하이라이트인 'Fix You'는 차분한 가운데 가슴 먹먹한 느낌을 전해준다.
3. 이들의 공연은 감동의 코드가 있다. 흥겨운 리듬으로 어깨를 들썩이게 만들고, 잔잔한 분위기로 숙연하게 만들어버린다. 매회 공연이 끝나면 기립박수는 기본이다. 심지어 교도소 재소자들을 위한 공연에서도 냉소적이던 재소자들도 결국 눈물을 흘리고 기립박수를 보낸다.
동료단원들의 죽음을 전해 듣고 비통해 하면서도 이들은 먼저 간 동료를 생각하며 공연을 한다. 관객들과도 슬픈 소식을 전하고 동료에게 바치는 노래를 부르며 함께 추억한다.
4. 이들의 젊음은 놀랍다. 92세의 아일린 할머니는 양로원에 사는데 최고령이지만 양로원에 사는 다른 노인들이 더 늙어 보인다. 다른 단원들도 마찬가지다. 우선 표정에서 그늘을 찾을 수 없으며 말과 태도, 행동에서 힘이 넘친다. 자신이 진정 원하는 일을 하며, 그것이 다른 이들에게 인정받을 때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 확인할 수 있다.
병마와 싸우는 단원들의 모습은 코를 찡하게 한다. 입원을 했으면서도 사실을 숨긴채 부축을 받으며 연습장에 나타난 밥 할아버지, 사경을 헤매는 의식불명의 상태에서도 병실에서 3일 내내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는 그의 사연은 조금은 아프다. 의사들도 포기한 죽음의 문턱에서도 기적적으로 회복하고 다시 밴드로 돌아오는 단원들이 많은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죽음엔 담담하면서도 더 이상 노래를 부를 수 없을까봐 두려워하는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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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타리이지만 진행이 빠르고 깔끔하다. 잘 만든 영화다. 재미와 감동이 잘 버무려졌다. 좋은 시간을 갖게 해준 Mr. T에게 고마움과 안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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