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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뉴스에 대해

개신교는 카톨릭의 민영화?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6. 16.
개신교는 카톨릭의 민영화인가 아닌가.

지인이 이런 말을 툭 던지는데 처음엔 엉뚱한 생각이라고 느꼈다. 하도 시국이 시끄럽다보니 자연스레 정부에 대한 풍자인가... 하는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명제에 대해서만 검토해 본다면 나름 일리가 있는 생각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기나 수도 등 공공 부문은 공기업에서 담당한다. 이사를 가더라도 지난 주소지에서와 거의 동일한 수준의 서비스를 받게 되고 요금체계도 균등하다.

카톨릭 교회가 이와 매우 유사하다. 이사를 가면 새 주소지로 교적이라는 것이 옮겨지게 되고 사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성당에 다니면 된다. 그래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런 만큼 각 지역마다 존재하는 성당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다소 불경한 듯?)'는 거의 균등한 것이다.

주일 미사만 하더라도 '제사'의 성격이 강하다보니 경건하고 장엄한 의식에 참여함으로써 영적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체험이 주이지 신부의 강론이 주가 되지는 않는다. 특정 성당의 신부가 강론을 잘 한다고 해서 다른 지역의 신자들이 몰려가고 하지는 않는 것이다.

반면 신자가 교회를 선택할 수 있는 개신교의 경우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교회마다 조직체계, 운영방식, 지향점 등이 많이 다르다. 또한 담임 목사의 역량에 따라 '서비스(?)'가 많은 차이를 보인다. 이 때문에 집에서 아무리 멀어도 굳이 '그 교회'에 '그 목사님' 설교를 들으러 가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신자에게 교회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보면 담임 목사들은 교회 부흥을 위해 치열하게 노력할 수 밖에 없다.

주일 예배에서 설교의 비중이 절대적인 개신교에서는 재미있고 감동적인 설교를 전달하기 위해 담임 목사들간의 무한 경쟁이 벌어진다고도 할 수 있다. 경쟁이 있는 곳에서 품질이 개선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매우 조심스러운 발언이지만 만일 카톨릭 신부의 강론과 개신교 목사의 설교를 모아 각각의 평균치를 낼 수 있다면 다른 것은 몰라도 그것을 준비하는 시간과 그것에 담긴 호소력과 감동은 큰 차이가 날 것으로 예상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개신교는 카톨릭을 민영화 하면서 설교라는 부분에서 나름 경쟁력을 얻게 되었다... 라는 명제를 제시해 볼 수 있다. 이것에 대한 판단은 읽는 분들에게 맡긴다.

하지만 이건 어떤가. 설교가 강론보다 재미있고 감동적이라면 개신교의 예배는 카톨릭의 미사보다 비교우위에 있는가? 혹은 개신교가 카톨릭 보다 비교우위에 있는가? 그렇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나의 부분을 집어내어 그것을 전체인 양 단정해 버리는 우를 범하는 것이 될 것이다. 담임 목사에 대한 의존도가 심화되고 있는 개신교에서는 '교회의 사유화' 처럼 그에 따른 부작용도 마찬가지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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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화라는 것이 본래 그렇지 않은가? 민영화를 통해 얻게 되는 것이 있다면 반대로 민영화를 하게 됨으로써 잃게 되는 것도 있다. 민영화를 추진할 것인가 아닌가의 판단은 각각의 기회비용을 충분히 검토한 다음에야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거기에 빠질 수 없는 것은 역시 국민적인 합의이고...

지금은 신자유주의 물결이 대세인 시대다. 민영화를 추진하는 사람들은 나름 사명감을 갖고 추진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당장 눈앞에 얻을 수 있는 것에만 매몰될 것이 아니라 향후 예상되는 부작용과 그것의 기회비용까지도 냉정하게 검토해 보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하며, 하기로 마음 먹었다 하더라도 이미 수준 높아진 국민들 뜻에 결국 반한다면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할 것이다.

한마디 던진 것에 생각이 길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