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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뉴스에 대해

목회자의 결혼은 루터의 패착인가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2. 17.
뉴스후를 보고 마음이 무겁다. 종교의 테두리에서 욕망의 덩어리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이다. 개척교회를 이루고, 작은 교회를 부흥시킨 담임목사들. 능력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성공의 이력이 일체의 모든 것을 허용하는 면죄부가 되어서야... 목자로서의 그들이 탐욕의 노예가 되어 신의 가르침과는 너무나 먼 거리에 있음이 아팠다. 목회자라면 남 앞에서 설교하기 이전에 자신의 부끄러움을 우선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신을 마주해 바로 볼 수 있을지... '진심어린 기도라는 것'을 지금도 하는지 강한 의구심이 들었다.

세속적인 성공은 이토록 모든 것을 심하게 변질시키는 것일까? 영상을 뒤덮는 건, 횡령, 탈세, 세습... 그로 인한 변명과 거짓, 위선과 비굴함이다. 21세기 한국엔 또 한명의 루터가 필요한 지도 모르겠다.

이들의 납득하기 힘든 행위들의 배경엔 가족과 인척, 특히 자식이 결부되어 있다는 것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가톨릭 교회의 부패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던 시절, 루터는 개혁의 핵이었고 교회의 잘못된 점을 바로잡는 사람이었다. 스스로 사제였던 루터는 교회 내의 문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문제에 있어 해법은 대개 '정반대로 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또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위주로 생각하는 경향은 때로 '오버'하는 판단을 하게 했을 법하다.

독신에 반대했던 그의 입장도 그런 측면에서 추론을 해볼 수 있다. 기독교 전성시대라고 할 수 있는 중세시대를 묘사한 소설 등에서도 금욕해야 하는 사제들이 은밀히 성관계를 갖거나 동료들끼리 동성애관계를 갖는 장면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종교개혁 당시에도 사제들의 성추문이 꽤나 공공연했던 모양이다. 루터에게는 이것 역시 사제로서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든 부패였을 것인데, 사제들을 단속하는 처방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할 때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독신제도의 철폐를 생각한 것이 아닐까 한다. 

전해지는 기록에도 루터는 독신주의에 반대했으며 줄곧 사제나 수녀의 결혼이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실제로 종교개혁에 나선 루터 역시 자신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수녀원을 뛰쳐 나온 젊고 아름다운 수녀(카타리나 폰 보라)와 결혼을 한다. 사제였던 그가 수녀와 결혼한 것은 종교개혁을 폄하하는 사람들이 그는 조롱할 때 가장 즐겨 사용하는 일화이기도 하다. 리더라면 필요성을 느끼는 것그것을 실천하는 것 사이에 '스스로 삼감'이 바탕이 되어야 함을 보여준다고 할까.

독신제도가 유지되는 종교가 있고 목회자 결혼이 허용되는 종교가 있다. 루터 스스로 실천함으로써 폐지에 앞장 선 목회자들의 독신제도. 현재 개신교가 목회자 결혼이 이루어지는 대표적인 종교인 가운데, TV를 통해 생생히 보여지는 일부 개신교 목회자들의 탐욕과 오만이 도를 넘어섰다. 인간의 욕망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는 않지만 이들에게 가족과 자식의 존재가 사적 욕망의 강력한 동인이 되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보인다. 과연 루터의 패착인가?

과거 가톨릭교회가 '정'이었고 루터가 '반'이었다면... 한번쯤 '합'을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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