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이력을 보면 조금 의외인 것이 있다. 지금 골프 유망주들과 비교할 때 골프는 다소 늦게 시작했고 처음 시작할 때에는 그리 재능을 보이지 못했다고 한다. 15세때 평균스코어가 90대였다고 하는데, 미셸 위가 13세에 이미 언더파를 친것에 비교하면 소렌스탐은 아주 둔재인 셈이다. 하지만 서서히 재능을 드러낸 소렘스탐은 대학에 진학하면서 실력을 활짝 꽃피웠고, 데뷔 전 부터 기대주가 되었다. 1994년 LPGA에 데뷔한 그녀는 첫 해 우승은 없었지만 수차례 톱10에 진입하면서 신인왕을 거머쥐었고 이듬해인 1995년 첫 우승트로피를 메이저대회인 US오픈에서 들어올림으로써 여제의 등장을 알렸다.
그녀는 스윙머신으로 불린다. 언제나 한결같은 템포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특히 아이언샷의 정확성은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LPGA통산 72승, 메이저대회 10승의 위업으로 명예의 전당에 일찍 오른 바 있는 그녀는 한 라운드 59타(파 72)라는 깨지지 않는 기록도 갖고 있다. 박세리가 통산 24승으로 명예의 전당에 오른 것과 비교하면 그녀의 위업이 얼마나 대단한 지 알게 된다. 통산 상금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당대 빅3를 형성했던 캐리 웹과 박세리와 비교해도 많은 차이를 보인다. 총 2200만불이 넘는 상금을 획득한 그녀는 1400만불의 캐리 웹, 1000만불의 박세리를 훌쩍 뛰어넘는다.
2000년을 전후하여 박세리를 비롯한 한국 여자 골퍼들의 LPGA진출이 본격화되면서 한국 골프팬들의 공적이 되기도 했고 유능한 신인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여제의 자리를 위협했지만 2000년 초반 그녀는 절대강자였다. 평론가들이 당시의 그녀가 보여주는 스윙을 '완벽함 그 자체'라고 입을 모아 칭찬했었다. 그녀는 남자에게 도전한 경력도 갖고 있다. PGA 무대에 도전했던 것이다. 힘에서 밀리다 보니 결과가 좋지는 못했지만 확실히 다른 여자 골퍼들과는 한 차원 다른 경기를 보여준 것은 사실이다.
그녀에게 위기가 닥친 것은 2006년 부터이다. 멕시코의 천재소녀 로레나 오초아가 몇 년간 놀랍게 성장하면서 2006년 세계랭킹 1위를 빼앗아 간 것이다. 더구나 2007년에는 등부상에 시달리며 데뷔 후 처음으로 1승도 얻지 못하는 시즌을 보냈다. 신예들의 도전은 점점 더 거세졌고 우승을 장담할 수 있는 대회는 없어졌다.
하지만 그녀는 재기했다. 2008년 4승을 올리며 여제의 건재를 알렸고, 이 중에는 오초아와 맞대결에서 올린 귀중한 승리도 들어있다. 모두가 신구여제의 화끈한 맞대결을 기대하게 되었다. 하지만 소렌스탐은 은퇴를 선언한다. 38세, 최고의 기량을 되찾은 강자가 갑자기 떠난다고 하자 모두가 경악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그렇게 해야 할 이유를 갖고 있었다.
그녀는 오래전 부터 '박수칠 때 떠난다'는 원칙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사업을 하면서 안정된 가정을 갖고 싶어했다. 운동을 하면서는 아이를 가질 수도 없고 사업에 전념할 수도 없을 것이기 때문에 부득이 떠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녀는 인생의 새로운 막을 열어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마지막 경기를 마치면서 그녀는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미련과 아쉬움이 없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인생의 새로운 문을 활짝 열었다. 골프 아카데미를 통해 골퍼들을 길러내면서, 자연을 그대로 살려낸 골프 코스를 디자인하면서 선수로서 느꼈던 것과는 다른 새로운 보람을 사냥하러 다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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