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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개인 비망록

도서관 자리맡기의 추억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12. 26.
지금부터 10여 년전 대학생 시절이 떠오른다. 당시에도 도서관은 자리가 그리 많지 않았다. 특히 시험기간은 말할 것도 없이 경쟁이 매우 치열했다. 시험기간이 아니어도 각자 취업이나 고시, 자격증 등을 준비하는 관계로 조용하고 공부가 잘되는 열람실의 경우는 아침 자리맡기가 성행했다. 다음은 당시 도서관 자리맡기와 관련한 몇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다.

1. 메뚜기족
아침 일찍 오는 것은 아예 포기하였지만 자리만큼은 조용하고 쾌적한 곳에서 공부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하는 도서관 공부족이다. 남이 맡아둔 자리에 가서 주인 책과 가방을 구석으로 밀어두고 당당히 자기 자리인양 공부를 시작한다. 누군가가 와서 어깨를 치거나 뒤에 서서 눈치를 잠깐 주면 바로 일어나 가장 가까운 빈자리로 이동한다. 이때의 모습이 메뚜기가 풀밭 위로 뛰어다니는 모습과 유사하다고하여 메뚜기족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가끔은 친구가 아는 척을 했는데 주인인가 해서 바로 일어나 가방을 챙기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 메뚜기 중에는 동성보다는 이성의 자리에만 집착하는 부류가 있었는데 이들에게는 공부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연애건수 역시 중요했다고...

2. 두꺼비족
처음엔 메뚜기인줄 알았는데 두꺼비로 판명된 유형. 메뚜기처럼 남의 자리에 앉지만 시간이 지나면 잠드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특히 머리를 숙이고 자다보면 책상 위에 침을 흘리는 경우가 많은데 침을 얼마나 흘리느냐에 따라 자리를 넘겨받을 가능성도 달라진다고...

3. 정의의 기사족
잠이 많은 공주를 위해 새벽같이 자리를 맡아주는 정의의 기사들이 있었다. 확실한 커플도 있었고 상당수는 공주의 마음을 얻기 위해 헛된 수고를 하는 부류도 있었다고...

4. 사마귀족
메뚜기로 시작했으나 점점 노하우가 쌓이면서 육식으로 진화한 유형. 이들은 정의의 기사가 잡은 자리나 오래도록 자리를 비울 것으로 예상되는 자리에 앉아서 여유있게 공부를 시작한다. 늦게 늦게 나타난 공주족과 오래도록 자리를 비운 자리 주인들도 일말의 양심이 있기 때문에 사마귀족이 자리를 지키고 앉아 눈을 아래위로 부라리면 슬그머니 가방을 집어들고 물러설 수 밖에 없다.

5. 왔다가그냥족
새벽에 명당자리를 맡았지만 아침 강의로 시작해 점심식사 후 몇 가지 일정을 '여유있게' 소화하고 늦은 오후 어슬렁거리며 나타나 자리에서 가방만 챙겨서 벗들과 한잔을 기울이러 가는 부류. 이들은 학과 사무실, 동아리방, 매점이 주요 거주지이나 가방만은 도서관 열람실에 있어야 한다는 투철한 믿음을 갖고 있다고.

지금은 많은 대학에서 자리맡는 것 자체가 원천적으로 금지된다고 하니 합리적인 면에서 많이 좋아졌다고 하겠다. 하지만 도서관 이용하는 이들의 근본적인 마인드가 바뀌기는 어렵지 않나 싶다. 특히 왔다가그냥족들이 여전히 득세하지 않을까? 그러면서도 그 시절이 왠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