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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과거시험' 공무원시험 상경인파 유감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7. 8. 15:17

과거시험이 부활했다. 어제 전국에서 6만여 명의 젊은이들이 전세버스를 올라타고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상경했다. 하루 전에 와서 시험장 가까운 곳에서 1박을 하고 여유있게 시험을 치르기 위함이다. 각 지역에도 시험이 실시되지만 시험 횟수도 충분치 않고 또 워낙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주어진 모든 기회에 응시해야 하는 것이다.  

여행사들은 발빠르게 여행상품을 내놓았다. 시험장 가까운 콘도를 전세내고 수험생들을 실어나른다. 미리 예약을 하지 못한 수험생들은 기차역과 터미널에서 발을 동동 굴렀고 인터넷에 표를 구하는 애절한 사연을 올리기도 했다. 상경한 6만명을 포함 총 14만명이 동시에 시험을 치르는 통에, 휴일 아침 때 아닌 교통혼잡도 예상된다.


21세기에 과거시험이라... 역사소설 속에서나 보던 장면을 곁에서 지켜보는 셈이군요. 화제가 되기 충분해 보입니다. 기자가 제목을 잘 달았군요. 하지만 왠지 뒷끝이 씁쓸한 것은 저만의 느낌일까요?

지금 많은 젊은이들이 삶의 현장에서 열정을 불태울 시간에 삭막한 도서관에서 하루, 한달, 일년, 그리고 수 년을 보냅니다. 이것 역시 열정일까요? 왠지 열정의 느낌 보다는 칩거라는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어떠신가요. 사랑방에 앉아 사시사철 공맹을 외우고 되새기는 18세기 선비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군요. 공무원 시험에 전념하는 수험생등과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선비들... 공통점이 하나 보이는군요. 무엇일까요? 잠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보지요.

조일전쟁의 교훈

15세기 이후의 대항해시대... 세계에서 미지의 곳들이 사라져가고 무역항로가 개척되면서 세계화의 물결이 거세게 일었습니다. 열강들의 해외진출이 활발하던 당시... 동방의 후진국 일본은 개방을 선택합니다. 지역을 분할한 채 살고 죽는 극한 투쟁에 몰두하던 일본의 영주들로서는 살아남기 위해 선진문물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지요. 조총이 대표적인 선진문물이었습니다.

'야만 일본'에 대해 비교 조차 할 수 없는 문화선진국을 구가하던 당시의 조선사회는 시대의 변화에 둔감했습니다. 그리고 중화와 조선을 제외한 다른 모든 나라들을 오랑캐라고 얕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조일전쟁이 벌어졌지요. 조일전쟁으로 국토는 황폐화하고 수도를 버리고 피난길에 나섰던 임금과 관료들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습니다. 국가가 생명력을 잃어버린 것이지요. 일본 무사들은 물러갔지만 전쟁은 쓰라린 교훈을 남겼습니다. 시대변화를 선도하지 못하는 집단이 현실에 안주하다가는 어떻게 되는지 여실히 보여준 것입니다.
 
하지만 조선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시대변화에 둔감했고 지도층인 양반계급은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갈 역량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공맹을 외웠고 조상을 모시는 문제를 명분으로 내세워 권력투쟁을 일삼았습니다. 기강이 허물어지고 신분제가 느슨해지면서 양반이 늘어났고 이들 모두는 여전히 과거시험을 준비했습니다. 미래는 무시되고 과거로 회귀했지요. 교훈은 잊혀진 것입니다.

문득 박지원, 홍대용, 정약용 같은 분들이 생각나는군요. 시대변화를 느끼고 조선의 변화를 갈망했던 분들이지요. 모두가 한 곳에 몰려 있을 때 용감하게 다른 곳을 가리키며 걸어간 삶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너무나 훌륭한 분들로 기억합니다. 이 분들의 뜻이 대세를 이루고 국가의 생명력을 다시 살려낼 수 있었다면 우리의 역사는 많이 달라졌겠지요. 만약 18세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떤 삶을 사시겠습니까?

다시 찾아온 대항해시대, 세계화

18세기에서 21세기까지 20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지금. 대항해 시대에 비견할 만한 세계화의 물결이 전세계를 뒤덮고 있습니다. 이 물결이 거세게 밀려드는 가운데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나옵니다. 가장들은 거리로 내몰리고 청년들은 사회에 첫 발을 내딛지도 못한 채 좌절하고 있습니다. 사회가 불안정해지면서 안정된 직장이 각광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이러한 분위기에서 공무원 시험은 많은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성공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 했습니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를 읽어야 합니다. 그토록 매력적인 공무원직의 안정성은 단 10년의 세월만 지나도 상당 부분 사라질 것입니다. 개방의 파고는 국경을 넘어서고 곧 이어 그 어떤 담벼락도 무너뜨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키려고만 하면 점점 뒤로 물러서야 하는 법입니다. 결국 설 곳이 사라지지요.

사실, 시대가 변화하는 흐름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렇게 하겠지요. 글로벌 마인드를 키우고 세계시장에서도 통하는 경쟁력을 갖추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 단초를 얻기가 어려울 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노력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요. 다만 치열한 현장을 바닥부터 겪으며 시작하기만 하면 됩니다. 멘토가 필요할 수도 있고 좋은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가이드를 얻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세계시장을 누비는 프로페셔널의 삶을 접할 기회가 없었을 뿐이지, 그런 사람들도 처음엔 다들 평범한 사람들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도전의욕이 생기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삶의 스케일이 문제입니다만 이런 스케일도 보고 듣고 읽는 것들에 좌우됩니다.

조금 겁나는 일일까요?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큰 낭비입니까. 청춘이 시들고 그들의 시간과 열정이 사장되고 있습니다. 14만명... 이 어마어마한 숫자의 사람들이 공무원시험에 응시하고 이들 중 대다수가 불합격 통보를 받습니다. 다들 '과거시험 신드롬'의 들러리인 것이지요. 국가적인 에너지를 한 곳에 모으는 것, 다시 말해 세계 무대를 누비며 많은 사람들을 먹여살릴 창의적인 인재들을 양성하는 것에도 시간이 부족할 판인데, 지금 많은 젊은 이들이 '현대판 공맹'을 외우고 또 외웁니다.

수능과 마술피리

시험이 점점 어려워진다고 하는군요. 국어, 영어, 국사... 1차 공통 시험입니다만 매우 어렵답니다. 20대에 치르는 '수능시험 시즌 2'이군요. 난이도를 높이고 변별력을 높인다... 해도 어차피 암기력을 테스트하는 시험이지요. 시험 끝나면 모두 잊어버리는...

과거시험에 올인한 수험생 분들에게 시대를 선도하는 삶으로 U턴을 제안합니다. 모두가 달려가는 그 곳이 정말 원하는 곳인가요? 혹시 두려움이라는 마술피리에 홀려 결국 강으로 빠지고 말, 한 무리의 쥐떼에 속해 있는 것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