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영화와 공연

두 갈래로 따라가보는 영화 <색,계>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9. 26. 22:11
이안 감독의 영화를 따라가려면 곳곳에 숨겨진 메시지를 해석해 조합할 각오를 해야 한다. 사소해 보이는 한마디, 동작과 몸짓, 눈빛, 시선, 한숨 등에서 영화 전체의 의미를 좌우하는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안 감독이 깔아놓은 메시지 모두를 들춰내려 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영화를 몇 번 정도 보고, 잘 쓴 리뷰도 뒤져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그러면 감독이 의도한 바는 어느 정도 따라잡을 수 있다. 


<색,계>는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본격적인 영화평을 쓸 생각은 없고 다만 머리와 가슴에 남아있는 여운을 끄집어 내어 두 갈래로 영화를 따라가본다.

1. 머리로

이안 감독은 상당히 대담한 시도를 했다. 올림픽을 목전에 두고 중국이 스스로 강대국임을 선언하려고 준비하고 있는 시기에 상당히 민감한 소재의 영화를 끄집어낸 것이다.

당시 중국은 장개석의 국민당과 모택동의 공산당뿐 아니라 상하이에 왕정위 세력이 있었다. 이들은 본래 국민당내 좌파였는데 친일로 변절하면서 상해 친일정부를 세우려는 시도를 했고, 이 무리 중에서도 영화의 주인공인 '이'가 핵심인물이었다.

겉으로 알려진 이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다. 항일운동을 하는 조직을 색출하고 사람들을 잡아들여 무자비하게 고문하고 죽이는 인물이다. 항상 신변보호를 하며 일체의 빈틈을 보이지 않는 치밀함이 있다.

하지만 이안 감독이 들여다보는 그는 전혀 다르다. 두려움에 지친 영혼이며 조직내에서도 이중 삼중으로 감시받는 사람이다. 일본이 패망하고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그들에게 빌붙어 오직 현재를 유지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를 사랑하게 되는 여주인공도 중국을 자극할만 한다.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목적을 달성하기에만 급급해 한 인간을 철저히 유린한다. 거기에 뛰어든 젊은 이들도 너무나 무책임하고 형편없는 모습들이다. 매국노를 유혹해 암살할 수 있는 기회를 완벽하게 만들어낸 여주인공.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그를 도망치게 하고 담담히 죽음을 받아들인다. 독립운동을 모욕하고 친일을 미화했다는 대목이 바로 여기다. 탕웨이가 실제로 중국정부로 부터 추방에 가까운 벌을 받고 홍콩 시민권을 얻어야 했던 것은 출연진 중에 그녀만 중국 본토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안 감독은 과연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인가.

머리로만 쫓아가려고 애써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이념의 시대에 대한 경계이다. 강력한 민족주의로 무장하는 중국. 이안 감독은 이념에 희생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휴머니즘의 깃발을 들어보인 것은 아닐까? 극도의 악인에게서 발견하게 되는 인간미가 생경하고, 어설픈 이념주의자들에게 철저히 유린되는 여인이 안쓰럽다. 그녀의 배신이 통쾌하게 다가오는 것에 적응하기 힘들었고... 아직도 고민중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친일파를 살려주고마는 그녀의 결정, 그건 결국 수긍할 만한가? 머리는 여전히 갸우뚱이다.


2. 가슴으로

일상의 굴레에서 반복되는 시간표에 따라 살면서 우리는 가슴이 설레어 본 적이 있던가? 설레어 본 적이 없다면 또 설렘을 찾으려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어쩌면 자신에게 저지르는는 가장 큰 '무책임함'일 것이다.

막부인이 되기전 왕치아즈는 학생이었고 전쟁 중 외국에 있는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아무런 희망도 없는 그녀는 친구에 이끌려 저항연극단에 가입하는데 거기서 자신도 몰랐던 재능을 발견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열광을 이끌어낼 수 있는 연기력, 자신의 연기에 극도로 몰입할 수 있는 숨겨진 끼를 알게된 것이다. 연기는 설렘이었고 곧 자신의 존재의미와도 같은 것이 되었다.

매국노를 유혹하여 암살하는 모의에 얼떨결에 가담하지만 그녀에게 그것은 애국적인 일이어서가 아니라 목숨을 건 '연기'였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극미의 어설픔조차 허용되지 않는 벼랑끝의 연기... 이러한 사실은 홍콩에서 대학생들만의 어설픈 모의가 무위로 끝나고 상해에서 테러조직으로부터 다시금 제의를 받을 때 분명해진다. 자신이 펼쳤던 미완의 연기를 마무리하고 싶은 생각이었던 것이다.

'이'를 유혹하는 모든 과정을 따라가 보면 일단은 그녀의 대담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의심의 빗장을 풀고 그를 끌어들이는 각각의 단계를 넘어설 때마다 그녀가 보여주는 야릇한 미소. 거의 마성이 엿보일 듯하다. 처음으로 가졌던 둘만의 식사시간. 가학적이기까지 했던 첫번째 정사. 잠시도 쏘아보는 시선을 거두지 않는 상대와 벌여야 했던 두번째 정사. 그녀는 자신의 목숨을 건 연기를 완성해간다.

그녀를 혼란스럽게 하는 건 '색,계'를 주문한 이들이다. 목적을 위해선 그녀의 목숨도 인격도 감정도 무시할 수 있는 사람들. 끝없는 희생만을 강요한다. 그에 비해 의심의 빗장을 푼 이후 진심어린 사랑을 쏟아내기 시작하는 남자. 그때부터 왕치아즈에게는 '목숨이 아닌 자기 존재'를 건 고민이 시작된다.

다시금 격렬한 정사 중에 총을 들어 남자를 죽일 수 있었음에도 망설이는 왕치아즈. 기생집에서는 그 역시 곁에 아무도 없는 외로운 영혼임을 알게되고... 덫을 놓은 곳에 그를 데려가면서도 뒤를 돌아보고 또 보고... 그러다 결국 그의 수줍고도 진심어린 고백에 마음이 허물어져 내린다.

- 난 다이아몬드에는 관심이 없소. 그걸 낀 그대의 손을 보고 싶었을 뿐이오.
- 이렇게 큰 반지를 끼다간 위험할까봐 걱정돼서요.
- 내가 그대를 지켜주겠소.   

그를 죽이고 죽든, 못죽이고 죽든 어차피 죽어야 했던 그녀. 그녀는 그를 이 세상에 남겨놓기로 결심한다. 그것은 상황에 떼밀린 결정이 아니라 '그녀의 존재를 건 결심'이었다. 그건 동료에게는 있을 수 없는 배신이었을지 모르나 그녀에게는 인생의 설렘을 결집한 최고의 결정이었다. 

나중에 확인되듯 어차피 죽을 목숨이었던 동료들. 그들과 함께 체포되어 끌려가 죽으면서도 더할 수 없이 당당하고, 원망의 시선을 던지는 동료들을 경멸하듯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 에, 그녀의 처형을 승인하고는 집으로 돌아와 그녀의 체취가 남아있던 침대에 앉아 영원히 이어질 듯한 회한을 뿜어내는 그의 눈빛이 오버랩된다.

이의 눈빛과 그 여운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녀의 결정은 어찌보면 너무도 잔인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으로인해 비로소 '살았다'. 진실한 존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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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집요하고 양조위와 탕웨이는 치열했다. 가슴으로 보자. 이처럼 깊고도 오래도록 떨리는 영화를 언제 보았던가. 이런 영화를 단순히 야한 영화로 치부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도 어찌보면 살아가는 재미가 아닐까?